
정부가 우리 국민의 북한 주민 접촉을 차단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돼 온 법 조항들을 없애는 데 동의했다. 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면, 북한 주민 접촉이 무제한 허용된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통일부는 국회에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냈다. 통일부는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비슷한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도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두 법안의 주 내용은 통일부 장관의 대북 접촉 신고 수리(受理) 거부권을 규정한 현행 남북교류협력법 9조의2 3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9조의2에 따라 우리 국민이 북한 주민과 접촉하려면 통일부 장관에게 미리 신고해야 한다. 3항은 ‘남북 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때’나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공공 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때’에는 통일부 장관이 그 수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간 차원의 남북 접촉에 대한 일종의 통제 장치다.
김준형 의원 법안은 이를 삭제하는 데 더해 북한 주민과 대면하는 ‘직접 접촉’만 신고 대상으로 삼고, 중개인이나 전화·이메일 등을 통한 ‘간접 접촉’은 신고 의무를 없애도록 했다. 이용선 의원 법안은 ‘북한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외 단체의 구성원은 북한의 주민으로 본다’는 조항도 삭제하겠다고 했다. 이 경우, 일본의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등과 신고 없이 접촉할 수 있게 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민간 차원의 남북 접촉은 사실상 이미 전면 허용된 상태다. 지난해 7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민간이 대북 접촉을 추진하기 전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한 ‘북한 주민 접촉 신고 처리 지침’을 폐기해 남북 민간 주민 접촉을 전면 허용했다. 신고 수리 여부를 판단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나오면서 남북 당국 간 관계가 전면 차단되자, 민간 접촉과 민간 단체 교류를 통해서라도 꽉 막힌 남북관계 개선 출구를 찾아보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정 장관은 “정부가 접촉 신고 수리나 거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침이었다”며 남북교류협력법 개정 추진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지난해 말에도 정 장관은 “앞으로는 통일부에 신고만 하면 북한 주민을 자유롭게 무제한 접촉할 수 있도록 민간의 대북 접촉을 전면 허용하겠다”고 했다. 이용선·김준형 의원도 9조의2 3항을 삭제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대북 접촉 신고가) 신고제가 아닌 사실상의 승인·허가제로 작동하고 있어, 남북 교류를 촉진한다는 법의 목적에 맞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해서 정부가 민간 차원의 남북 접촉을 통제할 근거 자체를 없애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정 장관의 판단에 따라 신고 수리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지만, 법을 개정하면 앞으로 민간 차원의 남북 접촉을 통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정부 개입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전직 통일부 고위 관료는 “규정을 완화해 대부분의 민간 접촉을 이미 허용해 주고 있는 마당에 굳이 신고 접촉 거부 조항을 삭제해 남북 접촉 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폐기하는 건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한 안보 전문가는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북한 측 인사와 전화·이메일을 주고받거나 조총련 인사들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북한 간첩에 문을 열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장관의 신고 수리 거부권 조항은 사문화된 조항이 아니다. 통일부는 이 조항을 근거로 일부 대북 접촉을 불승인해 왔다. 2022년 4건, 2023년 44건, 2024년 26건, 지난해 16건 등 최근 5년간 민간 대북 접촉 521건 가운데 90건(17.3%)이 통일부 장관이 신고 수리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불승인됐다.
신고 수리 거부권을 삭제하는 법 개정안에 대해 통일부는 “민간 교류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여건을 조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동의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법무부와 국가정보원은 두 법안이 제출된 지난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었다.
법무부는 ‘통일부 장관의 신고 수리 거부권을 존치하되 거부 사유를 구체화하자’는 입장이었고, 국정원은 ‘간접 접촉 신고 폐지로 북한 대남 공작 활동에 악용될 위험성이 높아지는 등 국가 안보상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법무부·국정원은 지난 2월 통일부 주도의 관계 부처 협의에서 통일부 의견대로 법안을 받아들이기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법안은 지난해 말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돼 검토되고 있다. 여당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고 여당 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없으며 정부도 찬성 입장을 정리한 만큼, 두 법안은 외통위와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처리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접촉 수리 거부 조항이 삭제되더라도 사전 신고 의무 및 미신고 시 과태료 등 제재 규정은 유지된다”며 “개정안은 사전 신고를 통한 접촉 관리 체계는 유지하되, 현행 수리 거부 사유가 포괄적으로 규정돼 행정청의 재량적 판단 여지가 큰 부분을 개선함으로써 신고제의 본래 취지에 맞게 제도를 합리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