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전 감독은 2023년 채널A ‘오픈 인터뷰’에 출연해 베트남에서 납치를 당할 뻔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여행하고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밤 11시쯤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는데 택시가 한 대도 없었다”며 “어떤 젊은 친구가 손을 들어 택시를 탔다. 관사까지 가는 길을 아는데 산길로 들어가더라”고 말했다.
박 전 감독이 “어디를 가는 것이냐”고 묻자 택시 기사는 “오피스에 간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어둡고 컴컴한 공터였다. 이내 택시 기사는 베트남어로 쓰인 서류를 꺼내 박 전 감독에게 사인을 강요했다.
박 전 감독은 “‘이 친구가 나를 모르는구나’ 생각했다”며 “공터 안에는 10명 정도 앉아 있었다. 10명 중 1명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내렸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들 대부분이 박 전 감독을 알아보며 “미스터 박! 박항서!”라고 외쳤고, 박 전 감독은 “그 순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인물이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더니 “저 사람 박항서야, 보내라”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고 한다. 잠시 뒤 다른 택시가 도착해 박 전 감독 부부를 태워 보냈고, 그는 무사히 관사로 귀가할 수 있었다.
박 전 감독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이끌며 아시안게임 4강 진출,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 등을 이뤄내며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불렸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베트남 정부로부터 2급 노동훈장, 수교훈장 흥인장, 감사훈장 등을 받았다.
이 일화는 최근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잇따르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앞서 8월 8일 캄보디아 현지에서 경북 예천군 출신의 대학생(22)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여름방학 기간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떠난 지 2주 만에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올 7월 17일에 A씨가 캄보디아에 도착한 후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그의 가족들은 조선족 말투를 쓰는 남성으로부터 “(A씨가) 이곳에서 사고를 쳐서 감금됐다. 5000만 원을 보내주면 풀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A씨의 가족은 캄보디아 대사관과 경찰에 신고했지만, 가족들이 한국에 있다 보니 A씨의 정확한 감금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없었다. 최초로 전화를 받은 지 나흘이 지난 후엔 협박범과의 연락마저 두절돼 가족은 A씨와 연락이 아예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A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대사관과 현지 경찰 등에 따르면 피해자의 사망 원인은 고문과 극심한 통증으로 인한 심장마비인 것으로 전해졌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2022∼2023년 연간 10∼20건 수준에서 지난해 220건, 올해 8월까지 330건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수익을 미끼로 내건 해외 취업 사기에 속아 납치된 피해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인 범죄 피해 우려가 확산하면서 외교부는 지난달 17일 캄보디아 프놈펜 등 일부 지역에 대해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 및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